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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12. 18 <대림 제4주일>
 
 - 루카 1,26-38 / 송영진 신부
 

<강생>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예수님 탄생을 예고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응답했고,

예수님의 잉태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 메시아의 탄생, 마리아의 선택은

모두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해진 하느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응답도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준비되어 있었던 응답이었습니다.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택을 받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잘 짜인 각본대로 진행된 일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선택의 자유) 없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각본대로 진행된 일이라면

우리가 이 일들을 중요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수없이 반복해서 같은 영화를 보고,

그래서 줄거리와 대사를 모두 외우고 있는 영화를 또 보는 것 같은 태도로

성경을 읽을 때가 있고, 그래서 성경의 내용들을 당연하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부터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열두 사도와 순교자들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선택은 인간의 상식과 예상을 초월하는 일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줄거리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천사가 찾아올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메시아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응답하고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무슨 일에서든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바로 그 점이

마리아의 위대함이고, 우리가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입니다.

신앙생활은 즉흥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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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은 '메시아의 강생'이라고 표현합니다.

'강생'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조물주가 피조물 위치로 내려와서 피조물과 똑같은 존재가 되신 것이 강생입니다.

강생은 곧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사랑의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주인이 노예를 사랑해서 노예 처지로 내려온 것으로,

또는 절대 군주인 왕이 천민을 사랑해서

천민의 위치로 내려온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살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해서 노예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로 갔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간 것은

하느님의 명령이 있기 전에 이미 그들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강생이 강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천으로 끝난다는 점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해서 그들에게 갔지만

가서 함께 사는 것으로 끝났다면 백성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을 인도해서 이집트를 탈출했고, 자유와 해방을 주었습니다.

 

왕이 천민 처녀를 사랑해서 천민이 되었다면 대단한 사랑이고,

그래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냥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왕이 정말로 그 처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천민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하고,

계급 제도를 철폐해서 온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고,

그 처녀를 왕비 위치로 끌어올려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으로 끝났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내려오신 그 하느님이

다시 우리를 데리고 올라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종교가 시작되고 신앙이 시작된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만 예고한 것은 아닙니다.

천사는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길게 설명했습니다.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고,

다윗의 왕좌를 받게 될 것이고,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고..."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는 고난만 겪고 죽어버릴 비참한 예언자가 아니라

온 백성을(온 인류를) 구원해서 하느님 나라로 데리고 가실 구세주입니다.

내려왔지만(강생했지만) 다시 올라가실(승천하실)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탄은

십자가 수난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부활과 승천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신학자들은 '하강 그리스도론', '상승 그리스도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하강과 상승이 종합되어야 그리스도론이 완성됩니다.

내려온 것만 보고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하면, 반쪽짜리 신앙이 됩니다.)

 

마리아의 응답은 내려오시는 하느님을 영접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다시 올라가시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3)."

성탄절은 우리를 데리고 가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날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님